
뉴스를 보다 보면 국회에서 한 의원이 단상에 올라가 밤을 새워가며 쉬지 않고 연설을 하는 장면을 가끔 보게 됩니다. 저도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는 도대체 왜 저렇게 잠도 안 자고 이야기를 계속하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단순히 회의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단한 열정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뉴스를 접하고 호기심이 생겨 검색하셨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해 소수당이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무제한 토론 권한입니다. 즉, 물리적인 몸싸움 대신 '말'이라는 무기를 사용해서 시간을 끄는 민주적인 투쟁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흥미로운 제도가 어디서 왔고, 왜 '해적'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 역사 속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쉽게 제 경험을 녹여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의 진정한 의미


흔히 필리버스터라고 하면 나쁜 의도를 가지고 회의를 망치는 행위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용어의 본질은 다수의 힘에 밀려 목소리를 내기 힘든 소수파가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거나, 최소한 해당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국회법에 보장된 정당한 권리이므로 단순히 떼를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제도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이를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만약 의석수가 많은 정당이 마음대로 모든 법을 통과시킨다면 소수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의원 한 사람이 단상에 올라가 체력이 다할 때까지, 혹은 회기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발언함으로써 다수당이 표결하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로 하는 전쟁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해적에서 유래된 흥미로운 단어의 역사


이 용어의 어원을 추적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6세기 카리브해를 주름잡았던 스페인 식민지의 해적들을 일컫는 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약탈자'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브리부이터(Vrijbuiter)'에서 유래했는데, 이것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거쳐 영어로 정착되면서 오늘날의 철자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왜 정치 용어에 해적이라는 말이 붙었을까요? 과거 서구 의회에서는 긴 연설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가 마치 해적이 배를 습격하여 운항을 막고 약탈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19세기 미국 상원에서 이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의회 내에서의 합법적 방해 행위'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어원을 알면 그 치열한 성격이 더 잘 이해됩니다.
고대 로마부터 시작된 긴 말하기의 기원


많은 분이 이 제도가 현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뿌리는 훨씬 더 깊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정치가였던 '소 카토'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집정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가 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연설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 원로원은 해가 지면 모든 회의를 종료해야 했기 때문에 이 규칙을 역이용한 것입니다.
현대적인 형태의 제도는 19세기 미국과 영국 의회에서 구체화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소수당이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아주 강력한 전술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것을 넘어, 법안의 부당함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홍보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기도 합니다. 역사를 알면 이것이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의 도입과 재도입


대한민국 헌정사에서도 무제한 토론은 꽤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64년 당시 김대중 의원이 동료 의원의 구속 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발언했던 것이 유명한 사례입니다. 하지만 과거 군사 정권 시절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이 제도는 한동안 사라졌다가,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약 40년 만에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6년에는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릴레이로 단상에 올라 무려 192시간 이상 토론을 이어가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많은 시민이 생중계를 지켜보며 정치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회 선진화법과 이 제도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패인가 국회 마비인가


이 제도에 대해서는 항상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합니다. 한쪽에서는 소수자의 의견을 보호하고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칭송합니다. 반대로 다른 한쪽에서는 시급한 민생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국회를 식물 국회로 만드는 비효율적인 쇼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중요한 법안이 이 때문에 제때 통과되지 못해 폐기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해결책은 이 제도를 감정적으로 비난하거나 옹호하기보다, 제도가 가진 양면성을 인정하고 감시하는 것입니다. 의원들이 정말로 국민을 위해 발언하는지, 아니면 당리당략을 위해 시간만 때우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또한 국회법에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토론을 강제로 종료시킬 수 있는 조항도 마련되어 있어 무조건적인 마비를 막고 있습니다. 균형 잡힌 시각이 중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필리버스터는 언제 끝나는 건가요?
A. 크게 세 가지 경우에 종료됩니다. 첫째, 발언하는 의원이 더 이상 할 말이 없거나 체력이 다해 스스로 내려올 때입니다. 둘째, 국회 회기 자체가 종료되면 자동 폐기됩니다. 셋째,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토론 종결에 찬성하면 24시간 뒤에 강제로 종료시킬 수 있습니다.
Q. 화장실은 갈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발언 중에는 단상을 떠날 수 없습니다. 만약 자리를 비우면 발언이 끝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원들은 발언 전에 물 섭취를 조절하거나 기저귀를 착용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Q. 아무나 할 수 있는 건가요?
A.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안건에 대해 의원 1명당 한 번만 발언할 수 있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의원이 번갈아 가며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하여 며칠씩 이어가는 전략을 주로 사용합니다.
필리버스터 완벽 가이드 – 정의, 절차, 역사, 사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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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필리버스터 – 한경 용어사전
국회에서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의 정의, 어원(스페인어 계열 ‘약탈자’), 한국 도입·폐기·부활 경위를 요약합니다.
시사경제용어사전: 필리버스터(Filibuster) – 기획재정부
국회법 제106조의2(무제한토론) 절차와 종결 요건, 국내 장시간 사례 등 제도 운영 내용을 정리합니다.
필리버스터 – 위키백과
어원(‘filibustero’), 19세기 중반 용례, 각국 의회에서의 운용 개요와 역사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리버스터’가 뭐길래? – 인천시 웹진 MOO
필리버스터의 사전적 의미와 우리 국회에서의 절차를 대중적 설명으로 정리한 안내 글입니다.
무제한 토론으로 의사진행 방해… ‘필리버스터’란? – YTN 앵커리포트(영상)
국회 필리버스터의 정의, 시작·종결 요건, 1948 도입–1973 폐기–2012 부활 흐름과 주요 사례를 영상으로 설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