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에서 "야당이 OOO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에 돌입했습니다"라는 소식을 접할 때, 우리는 한 국회의원이 단상에 서서 몇 시간이고, 심지어는 며칠 밤낮으로 연설을 이어가는 생소한 풍경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차피 투표하면 질 텐데, 저렇게 힘 빼면서 오래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필리버스터는 법안 통과를 '영원히' 막기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수적으로 불리한 소수당이 쓸 수 있는 합법적인 '최후의 저항 카드'이자, 국회 안이 아닌 국회 밖의 '국민'을 향해 보내는 아주 절박하고 시끄러운 확성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목적이 '결과'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최대한 늦추고 그 과정에 대한 '여론'을 바꾸는 데 있다는 점입니다.
‘해적’에서 유래한 이름


'필리버스터(Filibuster)'라는 단어는 원래 16세기 카리브해에서 활동하던 '해적'이나 '약탈자'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의회에서 소수파가 다수파의 의사 진행을 약탈자처럼 막아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우리나라 국회법에서는 '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 진행 방해'라고 부르며, 소수당이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합법적인 장치입니다.
즉, 필리버스터는 국회의 규칙 안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시간 끌기 작전'입니다. 소수당 의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끝없이 발언을 이어가면서, 최종 표결에 이르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죠. 이 작전의 성공은 법안을 막았느냐가 아니라, 이 시간을 얼마나 의미 있게 활용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막을 수 없는데 왜 할까?

"어차피 회기가 끝나거나, 다수당이 강제로 종료시키면 통과될 텐데 왜 하는 걸까요?" 이 질문이 바로 필리버스터의 핵심을 꿰뚫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의 진짜 관객은 국회 안에 앉아있는 다른 의원들이 아닙니다. 바로 TV와 인터넷 생중계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입니다.
소수당은 이 무제한 토론이라는 무대를 통해, 자신들이 왜 이 법안을 필사적으로 반대하는지를 국민에게 직접, 그리고 아주 길게 설명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평소에는 언론 보도를 통해 편집되고 요약된 주장만 전달되었지만, 필리버스터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 아주 상세하게 전달하며 여론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시간 벌기와 여론전


필리버스터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시간 벌기'입니다.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며칠의 시간을 버는 동안, 당내 전략을 다시 세우거나, 다수당과의 물밑 협상을 통해 법안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여론전'입니다. 의원들은 토론을 통해 해당 법안이 가진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이 법이 통과되었을 때 국민의 삶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득합니다. "이런 문제가 있는 법안이 이렇게 날치기로 통과되려 합니다!"라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죠. 만약 이 주장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게 되면, 다수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데 큰 정치적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성공일까? 실패일까?


필리버스터의 성공과 실패는 법안의 통과 여부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비록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더라도, 필리버스터를 통해 해당 법안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소수당의 입장을 명확하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랜 시간 토론을 이어갔음에도 국민적 관심과 공감을 얻지 못하고, 그저 '발목잡기'라는 비판만 받은 채 법안이 통과된다면 이는 실패한 필리버스터가 될 것입니다. 결국, 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는 심판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 국민의 손에 달려있는 셈입니다.
필리버스터를 멈추는 방법


이 끝날 것 같지 않은 무제한 토론을 멈추는 방법도 국회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토론을 진행 중인 '회기'가 끝나는 것입니다. 회기가 종료되면 필리버스터는 자동으로 종결되고, 해당 법안은 다음 회기에서 바로 표결에 부쳐지게 됩니다.
또 다른 방법은 다수당이 강제로 토론을 종결시키는 것입니다. 재적의원 5분의 3(현재 국회 기준 180명)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무제한 토론을 강제로 끝내고 표결 절차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소수의 의견을 힘으로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다수당에게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선택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필리버스터를 할 때 아무 말이나 해도 되나요?
A. 원칙적으로는 안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발언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관련성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법안의 역사적 배경이나 철학적 의미, 관련 사례 등을 이야기하며 사실상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도 합니다.
Q. 필리버스터는 우리나라에만 있나요?
A. 아닙니다. 필리버스터는 특히 상원의원의 발언 시간에 제한이 없는 미국에서 매우 유명하며, 영국, 캐나다 등 의회 민주주의를 채택한 여러 나라에 비슷한 제도가 존재합니다.
Q. 한 사람이 계속 말하는 건가요?
A. 아닙니다. 한 의원의 발언이 끝나면, 같은 당의 다른 의원이 이어서 토론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릴레이처럼 이어갑니다. 그래서 여러 의원이 며칠에 걸쳐 돌아가면서 발언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필리버스터 완벽 가이드 – 정의, 절차, 역사, 사례까지
필리버스터 완벽 가이드 – 정의, 절차, 역사, 사례까지
국회에서 중요한 법안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뉴스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 '필리버스터'.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한 명의 국회의원이 연단에 서서 끝없이 발언을 이어가는
tcs.sstory.kr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필리버스터'가 뭐길래? | 웹진 MOO - 인천광역시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다수당의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을 하며 시간을 끄는 전략입니다. - 필리버스터 - 나무위키
미국과 한국에서 의사진행 방해 수단으로 사용되며, 의사진행방해와 토론 장려라는 상반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 미국 상원의 필리버스터 규칙과 우리 국회법상 무제한토론 - DBpia
필리버스터는 의회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한 소수파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수단으로 제도화되었습니다. - 필리버스터를 끝내는 3가지 방법…누가 성공할까? - KBS 뉴스
필리버스터는 국민 관심을 끌고 정치적 메시지 전달 효과가 크지만, 법안 통과는 대부분 결국 이루어집니다. - 왜 사람들은 필리버스터에 열광했을까 - 한국경제
장시간 발언으로 정치 참여를 유도하고 정치문화를 활성화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으나, 무용론도 제기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