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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또 다른 위대한 발명, 세계 최초의 유량악보 정간보

by 일금이 2025.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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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또 다른 위대한 발명, 세계 최초의 유량악보 정간보
세종대왕의 또 다른 위대한 발명, 세계 최초의 유량악보 정간보

 

우리는 세종대왕 하면 한글 창제, 측우기, 해시계 같은 위대한 업적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만약 세종대왕이 'K-POP의 시조'라 불릴 만큼 뛰어난 음악가이자, 오늘날의 오선지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혁신적인 악보를 직접 발명한 '천재 작곡가'였다면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든 것처럼, 음악을 위한 새로운 '글자', 즉 '정간보(井間譜)'를 창안한 위대한 음악가였습니다.

이 글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세종대왕의 예술가적 면모와, 서양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음의 길이를 정확하게 기록한 세계 최초의 유량악보, 정간보의 놀라운 비밀을 알려드리는 흥미로운 음악 역사 이야기입니다.

 

악보가 없던 시대의 불편함

악보가 없던 시대의 불편함악보가 없던 시대의 불편함
악보가 없던 시대의 불편함

 

정간보가 탄생하기 전, 동양의 음악은 어떻게 기록되고 전해졌을까요? 당시의 악보들은 대부분 음의 높낮이(음정)만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솔' 다음에 '라'를 연주하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솔'을 얼마나 길게, '라'를 얼마나 짧게 연주해야 하는지, 즉 '음의 길이(리듬)'를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글자는 있지만 띄어쓰기가 없는 문장과도 같았습니다. 음악은 스승이 제자에게 입으로 직접 불러주고, 제자는 그것을 듣고 외우는 방식으로만 전수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마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음악은 조금씩 변형될 수밖에 없었고, 복잡하고 장엄한 궁중 음악을 통일성 있게 연주하고 보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우물 모양 칸에 담은 시간의 약속

우물 모양 칸에 담은 시간의 약속우물 모양 칸에 담은 시간의 약속
우물 모양 칸에 담은 시간의 약속

 

음악을 사랑했고, 절대음감을 가졌던 천재 군주 세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바로 '시간'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죠. 그는 우물 정(井) 자 모양의 네모난 칸(間)을 만들고, 이 한 칸을 '일정한 시간의 길이(1박)'로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간보'의 탄생입니다.

이 네모난 칸 안에 음의 이름을 적으면, 그 음은 한 칸의 길이만큼, 즉 1박 동안 연주하라는 뜻이 됩니다. 만약 두 칸에 걸쳐 하나의 음 이름을 적으면 2박, 세 칸에 걸쳐 적으면 3박이 되는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식이었죠. 음의 높이만 기록하던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음의 길이'라는 시간의 개념을 악보에 최초로 도입한, 음악사의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서양보다 200년 앞선 혁신

서양보다 200년 앞선 혁신서양보다 200년 앞선 혁신
서양보다 200년 앞선 혁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세종대왕이 창안한 이 정간보가 음의 길이를 정확하게 표기한 '세계 최초의 유량악보(有量樂譜)'라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서양의 오선보에서 온음표, 2분음표처럼 음의 길이를 나타내는 기호가 체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입니다. 세종대왕은 이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시간의 길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발명해 낸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나라 음악사를 넘어, 세계 음악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위대한 업적입니다. 한글 창제와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실용주의 정신과 창의성이 빛나는 순간입니다.

 

정간보, 어떻게 읽을까?

정간보, 어떻게 읽을까?정간보, 어떻게 읽을까?
정간보, 어떻게 읽을까?

 

정간보를 읽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합니다. 우선, 악보는 서양과 달리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 줄에서 왼쪽 줄로 읽어 나갑니다. 우물 정(井) 자 모양의 한 칸, 즉 '정(井)'이 한 박자가 되고, 이 칸 안에 율명(음이름)을 적어 음의 높낮이를 표시합니다.

만약 한 칸에 음이름이 하나 있으면 한 박, 두 칸을 합쳐 하나의 음이름이 적혀있으면 두 박으로 연주합니다. 한 칸을 둘로 나누어 음이름을 두 개 적으면 각각 반 박씩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네모 칸을 채우고, 합치고, 나누는 간단한 약속만으로 모든 복잡한 리듬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음악으로 백성과 소통하다

음악으로 백성과 소통하다음악으로 백성과 소통하다
음악으로 백성과 소통하다

 

세종대왕이 정간보를 만들고, '여민락(與民樂)' 즉,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이름의 새로운 음악을 직접 작곡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히 음악적 업적을 남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새롭게 창제한 훈민정음을 널리 알리고, 음악을 통해 하늘과 조상의 공덕을 기리며, 나아가 백성들과 함께 태평성대를 즐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정간보라는 새로운 악보 덕분에, 조선의 궁중 음악은 비로소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후대에까지 거의 원형 그대로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종묘제례악과 같은 전통 음악 속에는, 음악으로 백성과 소통하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위대한 꿈과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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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간보는 세종대왕이 혼자 다 만들었나요?
A. 세종대왕이 직접 기본적인 원리를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박연과 같은 당대의 음악 전문가들과 함께 내용을 다듬고 발전시켜, 궁중 음악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 널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Q. 지금도 정간보를 사용하나요?
A. 네, 그럼요. 국악을 공부하거나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정간보는 여전히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악보입니다. 국악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있으며, 우리 전통 음악의 고유한 리듬과 호흡을 익히는 데 가장 최적화된 악보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Q. 세종대왕은 정말 절대음감이었나요?
A. 네, 그랬다고 전해집니다. 편경(돌로 만든 악기)의 음이 정확하지 않은 것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기준음을 바로잡기 위해 직접 수많은 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정간보 창안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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