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녹두장군 전봉준’이라는 이름을 외우고, 그가 이끈 동학농민운동이 ‘반봉건, 반외세’의 성격을 띤다고 밑줄 그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시험을 위한 암기였을 뿐, 왜 평범한 농부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서야만 했는지, 그들의 가슴속에 어떤 불덩이가 타오르고 있었는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굶주림 때문에 일어난 반란이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이 위대한 저항의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동학농민운동은 안으로는 썩어 문드러진 사회 시스템을 바로잡으려는 ‘개혁의 외침’이었고, 밖으로는 우리의 삶터를 위협하는 외국의 세력을 몰아내려는 ‘자주의 함성’이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백성들이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위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백성의 등을 휩쓸던 채찍, 탐관오리의 수탈
동학농민운동이 타오르기 시작한 19세기 말 조선의 농촌은 그야말로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중앙 정부의 힘은 약해졌고, 그 틈을 타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 즉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들은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렸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세금을 매기고(백골징포), 갓 태어난 아기에게까지 군포를 물리는(황구첨정)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탈이 일상이었습니다. 농민들은 일 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도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억울함을 호소할 곳조차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민들이 원했던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절규였습니다.
나라의 곳간을 노린 외부의 손길
안에서 썩어가는 것도 모자라, 밖에서는 거센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의 항구가 열리면서,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상인들이 봇물처럼 밀려들어왔습니다. 특히 일본 상인들은 조선의 쌀을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갔고, 이 때문에 조선 내의 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농사를 지은 농민들은 헐값에 쌀을 빼앗기고, 정작 자신들은 비싼 값에 쌀을 사 먹어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안에서는 썩은 관리들이, 밖에서는 외국의 상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농민들 사이에 퍼져나갔습니다. ‘외세로부터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동학의 가르침
이렇게 흩어져 있던 농민들의 분노와 절망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 바로 ‘동학(東學)’이라는 새로운 사상이었습니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 人乃天)’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양반이든 상민이든, 남자든 여자든, 세상 모든 사람은 하늘처럼 존귀하고 평등한 존재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농민들에게 이 가르침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도 하늘처럼 소중한 존재인데, 왜 이렇게 억압받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자각은, 그들의 분노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함께 뭉쳐 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정신적 기반이 되어주었습니다.
고부에서 시작되어 전국을 뒤흔들다
마침내 1894년,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욕은 곪아 터지기 직전이던 농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는 농민들에게 강제로 세금을 걷어 만석보라는 저수지를 쌓게 한 뒤, 정작 그 물을 사용하는 데 또다시 비싼 물세를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전봉준과 농민들은 마침내 관아를 습격하여 억울하게 빼앗긴 곡식을 되찾았습니다.
처음에는 한 지역의 작은 저항으로 시작되었지만, 정부가 사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농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자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습니다. 황토현과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을 크게 무찌른 농민군은 기세를 몰아 전라도의 중심지인 전주성까지 점령하며 전국을 뒤흔드는 거대한 혁명의 불길로 타올랐습니다.
실패했지만 꺾이지 않은 위대한 외침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부패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안(폐정개혁안)을 정부에 제시하고, 스스로 개혁을 실천하기 위해 각 지역에 ‘집강소’라는 자치 기구를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외세인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일본군까지 조선에 들어오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됩니다.
결국 농민군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다시 일어섰지만,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처절하게 패배하고 맙니다. 비록 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이 남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역사상 처음으로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고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위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이들의 꺾이지 않은 정신은 이후 항일 의병 운동과 3.1 운동으로 이어지며, 우리 민족의 독립을 향한 의지의 굳건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전봉준은 왜 ‘녹두장군’이라고 불렸나요?
A. 전봉준의 키가 녹두처럼 작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하지만 작은 체구와 달리, 그의 용기와 지도력은 누구보다 컸기 때문에 백성들은 친근함과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를 녹두장군이라 불렀습니다.
Q. 동학농민운동에는 농민들만 참여했나요?
A. 대부분이 농민이었지만, 몰락한 양반이나 지역의 지식인, 그리고 동학을 믿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부패한 사회와 외세의 침략에 대한 문제의식은 특정 계층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Q. 운동이 실패로 끝났는데, 가장 큰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비록 실패했지만, 왕이나 지배층이 아닌 평범한 백성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입니다. 또한, 그들이 제시했던 ‘폐정개혁안’은 이후 갑오개혁에 영향을 주었으며, 외세에 맞서 싸운 정신은 항일 독립운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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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동학농민혁명, 19세기말 조선 민중의 반역 - 플랫폼씨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가혹한 수탈과 부패에 반발한 조선 민중의 대규모 봉기로 민중항쟁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 잃어버린 10년과 동학농민운동 - 올어바웃
동학농민운동은 동학 교주 최제우 신원 요구에서 출발해 탐관오리 수탈과 외세 침략에 맞선 농민항쟁으로 발전했습니다. - 동학 농민 혁명 - 나무위키
부패한 지배층과 외세 경제 침입에 고통받던 농민들이 동학 중심으로 일어난 반봉건·반외세 민중항쟁입니다. - 동학운동(東學運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학농민운동은 정치운동과 민란이 결합한 사건으로 조선 후기 사회모순과 외세침략 문제를 반영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 동학 농민 운동 - 우리역사넷
고부 민란에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은 농민의 수탈 반대와 반외세 투쟁으로 갑오개혁과 청일전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